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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Vol.12, Issue 1 Preview Page

Research Article

31 March 2023. pp. 233~245
Abstract
This research is on factors that had influenced the conversion of Daegucheon into alleys or back streets, during the Japanese imperial occupation of Korea. The Daegucheon covering, which was the main method of conversion of the river into alleys, was influenced largely by two factors: water control and urbanization. The conversion or covering was initiated by the narrowing and shallowing of the stream, and thus water pollution, following the construction of Leegongje and Daegucheon’s channel change, on one hand; and on the other, it was initiated by the urbanization of streets in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of the city. Some of the characteristics of the conversion could be noticed as follows: First, the conversion was closely related to the construction of the main streets; second, it was partial in the residential areas for Koreans, due to the prioritization of development for Japanese; third, the covering into alleys occurred mainly between 1923 and 1937; and last, Daegucheon covering was rare for sewer.
일제 강점기를 대상으로 대구천 골목화의 요인과 특징을 밝히는 본 연구의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일제 강점기 대구천 골목화의 핵심 토대는 대구천 복개이다. 대구천 복개는 대구천에 미친 내・외적 요인과 관련있다. 내적 요인은 대구천 스스로 복개의 필요성을 만든 것으로, 여기에는 이공제 건설과 대구천 유로의 인위적 변경에 의한 유량 감소와 유로 축소, 그에 따른 오염 문제이다. 외적 요인은 대구천과 관계없이 근대적 도시로의 발달 과정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시가지가로 개선이 이와 관련 된다. 이 같은 요인으로 이루어진 일제 강점기 대구천 복개에 의한 대구천 골목화의 특징은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 대구천 복개에 의한 골목화는 간선도로 건설과 관련된다. 둘째, 일본인 주거지역 중심의 도시 개발로 조선인 주거지역으로 흘렀던 대구천 복개와 골목화는 일부 지역에서만 이루어졌다. 셋째, 대구천 복개와 그에 따른 골목화는 1923년에서 1937년 사이에 주로 이루어졌다. 넷째, 하수구 공사를 위한 대구천 복개는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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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Publisher :The Association of Korean Geographers
  • Publisher(Ko) :한국지리학회
  • Journal Title :Journal of the Association of Korean Geographers
  • Journal Title(Ko) :한국지리학회지
  • Volume : 12
  • No :1
  • Pages :233~245